이론상 가슴이 답답하다는 증상은 매우 즉각적으로 반응해야하는 증상 중 하나이다. 환자의 표현상 가슴 답답함은 우리의 표현상 심장, 부정맥, 협심증, 심근경색과 관련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심전도 검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옳은 의학적(?)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이를 새벽 3시 30분에 대입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턴 당직을 하고 있노라면 드물지 않게 가슴이 답답하므로 빨리 심전도 검사를 해달라는 콜을 받는다. 3, 4월달 병원의 병태생리를 모르던 초짜 인턴은 큰일이 난 것 마냥, 심혈관질환에는 골든타임이 있기에 부리나케 달려가 심전도를 찍었다. 심지어 병동마다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타 병동에서 빌려올 것까지 감안하여 콜을 받고 바로 갔던 것 같다. 허나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마당에 그런 류의 콜들은 전혀 급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홍천 응급실에서(여러번 홍천을 들먹이는 것 같지만, 사실 인턴 과정 중에 익힌 대부분의 지식은 홍천 파견 때 습득하였다) 본 심근경색 환자들은 절대 가슴이 답답하다고 똑바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 어딘가가 불편하고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응급실 문을 들어왔다. 무언가 정상은 아니지만 콕 집어서 이게 가슴이 답답한 건지 그냥 우리한 건지 체한 건지 애매한 상태로 응급실을 방문한다. 아니면 정말 가슴이 ‘아픈 채로’ 안절부절 못해하며 숨을 헐떡이거나 한다. 그런 환자들이 대개가 ST분절 상승 소견을 보이고 바로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을 시키는 case들이다.

반면 위와 같이 병동 환자들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 심전도 검사를 하러 가보면 대개가 그냥 곤히 주무시고 계시거나 아니면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하신다.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계신 분들도 계신다. 그런 환자들의 상의를 탈의하고 정성스레 전극을 붙인 후 검사 버튼을 눌러 결과를 확인해보면 언제나처럼 너무나도 정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아니, 전부이다). 심지어 어제 새벽 3시반에 가슴 답답하다는 할머니의 심전도는 너무나도 깔끔하게 ‘Normal sinus rhythm, Normal ECG’ 결과가 나왔다. 무엇이 이 분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새벽 내내 잠을 뒤척이다보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뭐, 어찌됐든 그 시간에 콜을 받고 나온 나의 가슴도 답답해져 데미소다 청포도 맛을 하나 사먹었다. 신기하게도 가슴 답답한 게 없어졌다.


카테고리: Med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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