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일기 쓰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일기를 쓴다’는 행위 자체도 훌륭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이상 하루하루 별 차이가 없을 생활 속에서 일기장에 기록할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혹은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달달한 어휘를 선택하기 위한 행복한 고민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일기를 쓰기 위한 성실함도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겠지요.

어렸을 적에는 일기를 참 많이 썼습니다. 대부분은 학교 숙제 때문에 쓴 것이었지만, 어쨌든 많이 참 많이도 쓰긴 했습니다. 정말 아쉬운 건 그 때의 일기장들이 다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어린 꼬마 아이의 삶이 별 거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그 때의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 조금은 울적한 마음이 듭니다. 일기장을 한 번만 들추어 보면 그 날의 나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대학에 들어온 후 한동안 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꾸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 나름대로의 규칙은 지켜가며 하루를 기록해 나가곤 했습니다. 다시는 일기장을 잃어버리기 싫어서 컴퓨터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작은 비공개 블로그를 만들고 그곳에 일기를 쓰곤 했습니다. 한 학기 별로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관리하기도 쉬웠습니다. 꼭 집에서 일기를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오늘 하루의 의미를 찾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켜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생활은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본과에 들어오자마자 일기를 쓰는 빈도가 급격히 줄더니 급기야는 일기의 존재 자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가 주를 이루었지요. 또 매일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빠르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 자체가 고역 같기도 하였습니다.

우울한 마음이 온몸을 휘감고 있던 어느 날, 예전에 썼던 일기가 생각났고 블로그로 다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접속한 것이라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다시 찾는 데에 살짝 애를 먹긴 했습니다. 하마터면 또 한 번 일기장을 잃어버릴 뻔했지요. 새로 발급받은 비밀번호로 접속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썼던 모든 일기들이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하나 담겨 있지 않은, 칙칙한 텍스트만 빼곡히 담긴 글들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때의 장면이 영화관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재생되었습니다. 행복했던 기억들뿐만 아니라 가슴 아픈 사연들까지 자그마한 것 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해두었던 저의 일기를 보며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보는 것 마냥 즐거웠습니다. 이미 저의 일기는 저만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기를 꼬박꼬박 써내려갔던 그 작가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고마웠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시 일기를 써보겠다는 다짐이 쉽게 들 지가 않습니다. 너무나도 할 일이 많고 일기는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리게 되더군요. 울적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일기가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일기장에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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