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었던 책 중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책이 한 권 있다. 책 제목은 <종이봉지공주>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다 찢어진 종이로 된 옷을 입고 있는 공주를 왕자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굉장히 고귀하고 품격있는 공주님인데 단지 겉이 초라하다고 해서 왕자는 공주를 무시한다는 그런 단순한 내용이다. 어릴 적 나는 책을 다 읽고 이 이야기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 6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도저히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어머니께 이 책에 담긴 뜻이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크게 되면 알 것이라는 아리송한 답변만 하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당시의 나는 이 갈등의 원인을 공주의 탓으로 돌렸다. 만약 공주가 예쁘게 공주답게 차려입고 있었더라면 왕자가 엉뚱한 오해를 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언 15년이 흐른 지금, 21살이 된 나는 이 이야기를 책이 아니라 실제 세상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다. 위 이야기와 같이 겉이 초라하다고 실제 가치까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생각해서 겉이 번지르르 하다고 실제 가치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서는 겉을 포장하는 일이 너무 흔하게 이루어진다.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보여주기’는 절대로 선하지도 않고 절대로 옳지도 않다. ‘보여주기’는 마치 마술과 같다. 마술의 트릭은 관객의 시선을 돌리고 그 타이밍에 관객을 속이는 것이다. ‘보여주기’ 역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돌려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보여주기’는 한번 시작을 하면 쉽게 멈추지 못한다. 사람들의 눈에 계속해서 좋은 모습만 비춰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서서히 자리 잡기 때문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이 주는 호감을 반복해서 느끼다보면 나중에는 타인의 작은 비난조차도 나를 향해 쏘아진 화살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보여주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오히려 무언가를 감춘다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들이 많을 수록 감추고 싶은 상처의 깊이도 깊은 법이다. 어찌보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의 안목만 좋다면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사실 ‘보여주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상처를 내놓았을 때 돌아오는 것은 적절한 조언과 치료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상처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런 의미없는 비난 뿐이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할 것이면서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말을 한다.

이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되려면 누군가가 상처를 내비쳤을 때 따스하게 보듬어 주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무조건 적절한 치료 방법을 내놓으란 뜻이 아니다. 단지 동정의 눈길과 비난의 손가락질이 아닌 공감의 눈길과 관용의 태도로 지켜봐주기만 해도 스스로 고쳐나갈 힘을 얻을 것이다.

카테고리: My Writings

0개의 댓글

답글 남기기

Avatar placeholder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