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과를 세번째 돌고 있다.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 그리고 이번달에는 혈액 내과를 돌고 있다(어쩌다보니 다음달에 돌게 될 강릉외과에서도 주치의 잡을 할 예정이다). 인턴 시작 무렵, 어렴풋이 주치의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주치의 잡이 껴있는 턴 위주로 돌고 있다. 홍천 응급, 강릉 신경, 서울 호흡기내과에 이어 이번달 혈액내과에서도 (비록 2명의 환자만을 담당하긴 하지만)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주치의 잡이 메인이었던 반면 이번달에는 인턴 잡이 메인이고 곁다리 느낌으로 주치의 잡을 한다.

혈액내과의 또다른 특징은 골수 검사도 인턴이 한다. 골수검사, 뇌척수액 검사가 인턴잡인 병원이 있기도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에서 골수검사는 레지던트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워낙 검사 수가 많다보니 일부를 인턴이 나눠서 시행한다. 5주차로 접어드는 지금에서야 아주 능숙하게 할 수 있지만 첫주에만 해도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골수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뼈를 뚫어야되는데 그 힘을 얼마나 조절해야할지 감이 없었고 어느 정도 깊이로 들어가면 될지 가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환자들마다 골밀도가 달랐기 때문에 손끝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깊게 들어가면 femoral a.를 뚫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듣고난 직후에는 검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골수 검사는 aspiration과 biopsy로 이루어진다. 소독, 마취 등의 기본적인 작업을 끝내고 나서 needle을 이용하여 뼈를 뚫고 골수에 위치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먼저 syringe를 이용해 필요한 양의 골수를 흡인해서 끄집어낸다. 필요량을 다 채취하면 조금 더 needle을 전진시켜 biopsy를 위한 검체를 채취한다. 처음에는 내과도 아닌데 내가 이걸 왜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신경과에서도 간혹가다가 골수검사를 시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뿌듯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어쨌든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니 말이다.

운이 좋게 내 유일한 내과 1년차 친구도 함께 혈액내과 파트를 돌게 되어 더 재밌게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친구와 다른 2년차 선생님 덕분에 뇌척수액 검사도 시행해보았다. 물론 3월달부터 주구장창 하게 될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턴하는 와중에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술기였는데 여지껏 기회가 닿지 않아 한번도 못해봤는데 어쩌다보니 혈액내과에서 하게 되었다. 아직 서너번 정도밖에 안해보긴 했지만 은근 자신감이 붙어 앞으로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학생때부터 혈액암 파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주치의 잡을 열심히 한 것 같진 않다. 물론 두명 밖에 안보고 있기도 해서 딱히 열심히 할 것도 없긴 했다. 전반적인 혈액암에 대한 접근법을 배웠다기보다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때 대처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질병의 특성상 내가 평소에 보던 전혈구검사(CBC)를 가진 환자들이 많지 않다. 백혈구 수가 1,000개 미만이거나 10,000개 이상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혈소판 수도 50,000개를 밑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infection을 걱정할 수 밖에 없고 실제로 열이 조금이라도 나기 시작하면 항생제를 강하게 사용하곤 한다. 내가 맡았던 환자 한분도 갑자기 38도 이상의 고열을 보이며 컨디션이 하루 사이에 급격하게 악화되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를 모두 사용하고 스테로이드를 며칠간 쓰고 나서야 열이 떨어지고 컨디션도 회복하였다.

혈액암이 고형암보다 더 무섭다고 느낀게 갑작스럽게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abga를 비롯하여 여러 검사를 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expire 하는 경우도 있었고 icu를 두세번 왔다갔다 했음에도 결국 다음날 expire 한 경우도 있었다. 한 장기에 국한되어 증상을 보이는 고형암과 달리 혈관을 따라 암세포들이 둥둥 떠다니니 한번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수술로 떼어내지도 못하고 결국 답은 항암제인데 아직까지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내과 턴표가 배정되고 나서 이전에 이미 해보아서 익숙한 호흡기내과 파트와 바꿀까도 조금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새로운 파트를 도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바꾸지 않고 혈액내과를 돌게 되었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마지막 한주도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ps. 인턴 생활이 이제 5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인턴생활은 다음주가 마지막이다. 죽었다 깨나도 두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인턴생활이라 후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더는 없을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또 1년간 함께 고생해온 인턴 동기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안타깝다. 인턴 라운지에 옹기종기 모여 각자가 겪은 여러 썰들을 풀며 깔깔 웃어댔던 나날들이 곧 있으면 추억이 되겠지… 병원에서 온갖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말단의 위치였기에 억울한 점도 많았지만 배운 것들도 많았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더 높은 위치에 다다랐을 때,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바쁜 와중에 최선을 다해 지금을 기록으로 남기려 애쓰고 있다. 남은 5주도 무탈하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모두의 무운을 빈다.

카테고리: Med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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