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03

한번 글을 쓰기 시작하니 쉽게 멈추지가 않는다. 5, 6년 전 한창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그라든 줄로만 알았던 글쓰는 습관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근무하면서도 계속해서 글 소재를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단어를 되뇌이는 걸 보니 한동안 꾸준하게 글을 쓸 것 같다.

1.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Pulmonary embolism)

최근 겪은 몇몇 일들로 인해 공부를 해야하는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의 상황을 피하고 나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
이틀 전 가슴답답함과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한 50대 남자가 있었고 ABGA상 SaO2가 76%였다. EKG는 일단 MI는 아니었고 산소 10L 투여하며 lab을 기다렸다.
Lab를 기다리며 찬찬히 ABGA를 살펴보니 Hypoxemia 말고는 이상이 없었다. 이걸 어떻게 approach 해야 하나 생각하던 중 아래 그림이 생각났다. PaCO2는 정상이었고 P(A-a)O2는 증가해있었다. 산소 10L 투여 후 Finger-SaO2 80 후반 대까지 올랐고 f/u ABGA에서도 SaO2 92% 확인할 수 있었다. 산소 투여로 O2가 교정되었기(correctable) 때문에 그림대로라면 V/Q mismatch에 도달하게 된다. Asthma/COPD는 아닐 것 같고 lung 문제보다는 느낌상 vessel 문제 일 것 같았다. 이 정도 하면 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건 pulmonary embolism 밖에 없다. 환자한테 PE에 대한 risk factor가 있었는지 물어봤는데 그런 것 전혀 없단다. Lung 문제든 vessel 문제든 CT를 찍어야 되니깐 바로 Enhanced Chest CT를 찍었다.
한편으로는 기대한 대로 Pulmonary embolism이 나오길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CT 결과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바대로 오른쪽 폐동맥을 꽉 막고 있는 혈전이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 순간의 나는 혈전이 보이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맨날 문제랑 교수님 수업자료에서만 봤지 막상 내가 내린 처방내린 CT에서 혈전이 보이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 눈에 보이는 CT 화면이 그렇게 믿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5분 정도를 망설였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 다시 정신을 차리고 arrange하여 늦지 않게 transfer 보내긴 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정말 교과서적인 CT 사진이었는데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던 내 자신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미 비슷한 사진을 수십번 보았을 터인데 말이다. 말 그대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case였다.

2. DOA

홍천에 와서 이틀에 한번 꼴로 하는 일 중 하나가 DOA(Death on arrest, 사망한 채로 병원에 도착하는 것을 의미) 사체검안과 사망선고이다. 사망선고는 다음번에 쓸 계획이다. DOA 검안을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경우가 많다. 정말 평범한 형태로… 죽음 그 자체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죽기 전 수개월 간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이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쪽 눈 전체를 침범한 skin cancer로 추정되는 직경 10cm 가량의 mass를 달고 온 경우도 있었고, breast cancer 때문인지 한쪽 유방 전체가 necrosis 된 채로 오기도 한다. 미심쩍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목이 조인 흔적이 있거나 타박상의 흔적이 있는데 보호자 혹은 보호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면 기분이 싸해진다. 물론 검안서 상 사인을 미상으로 나가는 것 외에 내가 더 추가로 해야할 일은 없긴 하다.

3.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평화로운 응급실에 응급환자(MI, Arrest, ICH 등) 한 명이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응급실이 마비가 된다. 간호사 선생님 두 명, 기사 선생님 한 명, 의사(= 인턴;;) 많아야 두 명… 이렇게 5명 정도 되는 인원이 전부인지라 응급 환자가 들어오면 모두가 그 사람에게 매달리게 된다. 당연히 다른 경증 환자들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린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일들을 빠른 시간내에 처리해야되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신경 쓸 수가 없다. 의학적 처치, noti, 서류 작성 등등을 하다보면 적어도 20분은 한명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면 언제나 옆에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라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응급실에 와서 기다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왔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타인의 죽음보다 본인의 작은 상처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알지만 그럴 때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차오르는 화를 꾹 누르고 ‘잠시만요’라고 말하긴 하지만 매번 언제까지 기다려야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 받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4. 안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Epigastric pain)

60대 남자가 1시간 전 발생한 vomiting, epigastric pain을 주소로 응급실에 왔다. 119를 불러 타고 온 것이 못내 미심쩍었지만 경험상 보통 아침 시간대에 배아픈 환자들이 오기 때문에 단순 소화불량이겠거니 생각했다. 전날 술도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고 했다. 또 두번이나 물어봤지만 vomiting 이후로 pain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술도 많이 마셨겠다, 거기다가 토까지 했다니깐 당연히 GI problem인 줄 알았다.
명치 부분이 계속해서 불편하다며 끙끙 앓는 모습이었다. Tenderness를 확인하려고 epigastric 부분을 누르는데 거기가 아니란다. 그러면서 손을 자꾸 위로 올리며 윗 부분이 아프단다. Chest와 Abdomen의 경계, 딱 거기가 아프단다. 3초를 생각하고 이건 EKG를 찍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EKG를 찍는데 아직 출력도 하지 않았는데 기계 화면 상에서 ST elevation이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출력된 결과물에 적힌 EKG 기계 판독에서도 Lateral infarction 말고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른 검사, 처치 모두 멈추고 바로 transfer 보냈다. Epigastric pain에 호되게 당했다. 정말 EKG를 찍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5. 다음 턴

이번주를 끝으로 5월 턴이 끝난다. 같이 홍천에 온 인턴 동기는 이제 홍천을 떠나 강릉으로 간다. 나는 홍천 파견이 2개월이기 때문에 다음 턴까지 홍천에 남아있는다. 나는 처음부터 홍천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 친구는 몇몇 사건으로 인해 급하게 턴이 바뀌어 홍천에 오게 되었다. 큰 사건사고없이(?) 서로 의지하며 한달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카테고리: Medical science

0개의 댓글

답글 남기기

Avatar placeholder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