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에게 국민의 지지가 왜 필요할까


조선일보 [朝鮮칼럼] 전공의 선생님들, 이젠 돌아오십시오

서울경제 [여명] 의료공백 126일, 전공의는 응답하라


병원 밖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좋은 점들이 상당히 많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 외의 모든 것이 좋은 점이다. 일단 엄청난 양의 업무와 하루가 멀다 한 당직에 치여 살던 삶을 탈피하였다. 제때에 식사를 하고 제때에 잠을 자니 건강이 좋아졌다. 시간이 널널하다 보니 여러 취미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3월 초,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골프에 입문하였다. 그동안 못했던 공부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순수 computer science에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러기에는 머리가 따라가질 못할 거 같아 지금은 data programming 쪽으로 kaggle 공부를 하고 있다. 본과 4학년 이후로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HSK 5급 책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있다. 같은 병원에 있어도 서로 다른 과 사람이면 모르기 마련인데 이 기회를 틈타 술자리에서 같이 술 한잔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병원 전공의들도 알게 되었으며 기자를 비롯한 의사 외 사람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러 좋은 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값진 것은 생각하는 힘이 성장하는 기분이다. 마냥 병원에 갇혀 매일매일 반복된 일상을 살던 직업인으로서의 의사가 아닌, 200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은으로서의 시민이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깨달은 바도 있으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4개월을 넘어 5개월째를 향해가고 있는 와중에도 언론에서는 아직까지도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국민들이 전공의들을 지지하지 않으니 병원에 복귀하라고 외치고 있다. 서울경제에서는 이 사태의 시작과 끝은 전공의라며 다행히 전공의 없이 병원은 잘 돌아가지만 전공의들이 병원에 돌아와서 대화를 할 시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요즘 기자를 만나다 보면 슬슬 이 사태를 깨닫는 거 같은데 위 두 사설을 쓴, 그리고 이와 비슷한 류의 사설들(너무 많아서 다 가져오진 않았다)을 쓴 모든 글쓴이들은 도대체 전공의를 한명이라도 만나보고 저런 글을 쓴 것일까 싶다.

일단 우선, 도대체 왜 전공의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난 이런 표현이 너무나도 불쾌하게 다가온다. 전공의가 언제부터 국민의 지지, 국민 여론을 밥줄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정치인 나부랭이들 뿐이지 절대 전공의가 아니다. 전공의는 그저 의사로서, 단지 의과대학 공부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수련을 받고 싶어 전공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지 여론에 이끌려 전공의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수련을 받기 싫다며 병원을 떠나갔는데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니 병원에 돌아와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식의 사고 방식을 거쳐야 나오는지 모르겠다.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글쓴이가 대통령실 수석을 지낸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위에 말한대고 전공의를 한명이라도 만나보긴 했을까.

두번째, 도대체 전공의 없이 병원이 잘 돌아가는데 왜 전공의가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물며 이 사태의 시작과 끝은 절대 전공의가 아니다. 이 사태는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발표하며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이미 대한민국 의료의 붕괴로 정해졌다. 전공의가 돌아간다고 해서 이 사태를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이 세대는 버틸 수도 있을지 모르나 다음 세대에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의사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 의료계 한복판에 있는 내가 보기에 보장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 그런 의사가 없을 것이다.

나이 한껏 잡수신 어른들은 왜 본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옳고 젊은 사람들은 본인 말을 다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직 내가 30년 밖에 살지 않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이 사태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의 수준이 꽤 높은 줄만 알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하교 후 종이 신문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학원 공부, 시험 공부에 바쁜 시기였지만 그래도 신문 읽는 것이 좋아서 1-2시간은 시간을 내어서 1면부터 마지막 사설까지 탐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사태 이후 언론은 내게 실망스러운 모습의 연속이었다. 정부가 하는 말을 옮겨쓰기에 급급할 뿐, 그 이면에 담긴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내용을 풍성하게 채우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며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던 과거 종이신문과는 다르게(물론 인쇄부수는 신경이 쓰였겠지만) 어떻게든 그 기사 페이지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헤드라인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뽑아내는 모습이었다. 수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보아왔지만 단 한번도 인터뷰이 발언의 핵심이 헤드라인에 담긴 적이 없었다.


* 화가 가득 담긴 채로 글을 써서 글이 꽤나 두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