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에 담긴 우리나라 소비문화

나그네 쥐, 레밍을 알고 있는가? 이 쥐는 집단으로 서식지를 옮겨 다닌다. 레밍의 이상한 특성은 이동 중에 드러난다. 어느 집단이든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 쥐들은 우두머리를 무작정 따라가기만 한다. 우두머리 레밍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불구덩이로 뛰어들어도 나머지 쥐들은 전혀 멈칫한 기색도 없이 떨어지고 뛰어든다.

개체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집단자살’로 인해 멸종 위험에 처하거나 그럴 일은 없다.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어떤 이유야 있겠지만 그래도 우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보고 우스워하는 것은 자조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레밍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문화에 관해서면 더욱 더 그렇다.


2014년 하반기 현재 대한민국은 허니버터칩 광풍에 휩싸여있다. 사람들은 선뜻 지갑을 여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찾으려고 시간을 쏟기도 한다. 인터넷과 뉴스에서는 연일 허니버터칩 품귀현상에 대한 보도 내용들이 올라온다.

품귀현상은 오늘날만의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여러 물품들의 품귀현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고작 과자 하나가 품절 상태에 다다른 적은 없었다. 예전에는 각종 원자재들이 부족했다. 피혁 원단 등의 옷 재료가 모자랐고 시멘트 철근 등의 건설자재들이 부족했다. 때로는 쇠고기, 버터, 생크림 등의 먹거리가 부족한 시절도 있었고 농업 용품인 비료나 제초제, 심지어는 백신의 공급이 턱없이 적을 때도 있었다. 더운 여름에는 에어컨, 냉장고 등의 냉방기기의 물량이 부족했고 추운 겨울에는 기름 보일러를 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나 같이 꼭 필요한 것들이 모자란 시절이었다. 옷 없이, 밥 없이, 집 없이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옷이 부족하거나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집이 부족하지는 않다. 위에서 언급한 허니버터칩과 같이 굳이 없어도 되는 그런 것들의 품귀현상이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흐뭇한 마음도 든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더 이상 의식주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소득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우리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2014년 광풍 내지 품귀현상을 일으킨 상품들을 살펴보자. 상반기 ‘요거프레소’ 디저트 카페의 ‘메리딸기’라는 특정 음료가 반짝 인기를 끌었다. 중반기 무렵에는 ‘MY BOTTLE’이라 적혀있는 ‘마이보틀’ 물병이 유명세를 탔다. 일본 업체의 제품이었지만 엄청난 수량이 동해를 건너 넘어왔고 온라인 매장에서는 품절 사태를 기록했다. 하반기에는 허니버터칩과 더불어 각종 장난감들이 품절 목록에 올랐다. 요괴워치와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등의 장난감들은 크리스마스 특수를 타고 매점에 입고되자마자 팔려나갔다. 특히나 장난감의 경우는 그 수량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매점 개장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던 학부모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나 같이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들만 줄줄이 나열되었다. 사실상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왜 이토록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일까? 광고 한번 안한 제품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지갑을 그토록 ‘쉬운 지갑’으로 만들었을까? 그 답은 SNS에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SNS는 일상이다. 밥 한 끼, 술 한잔할 여유도 없는 친구들과 SNS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는다. 또 연예인과도 얼마든지 SNS를 통해서라면 친구 관계로 지낼 수 있다. 이 순간, SNS는 주요 정보 공급처가 된다. 광고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깔려있는 이 바닥에서 SNS나 블로그의 게시물들은 굉장히 믿을만해 보인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혹은 친하게 느껴지는 연예인들의 행동은 충분히 따라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좋아 보이는 것을 모방하고자 하려는 인간의 깊은 본성까지 더해지면 더 이상 소비에 관한 의사결정회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곧바로 구매로 직행한다.

개인들의 이런 소비행태에 마지막으로 불을 지피는 것은 구별심리 혹은 계급심리이다. 상품을 구입해서 얻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을 가지지 못한 자들과 상품을 구한 자신을 구별해도 된다는 권리라 보는 게 더 가깝다. 실제로 인터넷에 각각의 키워드들을 검색해보면 그러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일종의 능력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구하기 힘든 제품들을 손에 얻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자랑할 만한 능력일지는 의문이다. 남들이 얻지 못하는 상품을 구매하면서 소비자들은 희열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남들은 그러한 면에서 자신보다 뒤떨어졌다고 여긴다.

구별심리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소비자들은 사실 제품 자체를 사용하기 위해 구매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품에 상품이 안기는 즉시 SNS를 통한 ‘자랑질’이 시작된다. 메리딸기를 마시며 바쁜 일상 중 여유를 즐기는 고상함을 나타내고, 마이보틀에 정수기 물을 담으며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허니버터칩 후기를 올리며 열정을 피력한다.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구하기 힘든’ 장난감을 사주며 부모로서의 능력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단지 친구 혹은 스타 연예인의 SNS를 보고 따라했다는 사실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다.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아더 왕 마냥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기조는 명품에 대한 논란이 한창 일 때부터 계속 되고 있다. 명품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층심리를 심어준 장본이다. 어느 넥타이를 매는지, 어느 차를 타는지, 어느 백을 들고 다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상대방을 파악해서 적절한 계급에 집어넣었다. 명품 곁에는 언제나 ‘고급’, ‘세련’, ‘상위’ 따위의 단어들이 따라다니는 이 사회에서 그런 명품의 역할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가장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명품이 뿜어내던 아우라가 이제는 한낱 음료, 과자, 혹은 장난감에 투영되었을 뿐이다.

그 아우라는 사실상 명품이 뿜어내던 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명품은 비싸고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제품들은 싸기 때문이다. 허니버터칩을 구입한 소비자는 고작 1500원으로 자신을 남들과 구별된다고 느낀다. ‘메리딸기’나 ‘마이보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난감의 경우도 비싸봐야 10만원 안팎이다. 수십,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백, 명품 코트, 명품 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금전적인 부분으로 인한 진입장벽이 해제되자 소비자들이 물밀 듯이 들어온 형국이다.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약간의 구매 ‘능력’ 발휘만으로도 쉽게 계급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누가 마다하지 않겠는가. 자존심이 낮아진 일상의 나에게 이러한 물건들은 자존심을 높임과 동시에 직위까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탈출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표면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 정작 내부는 그렇지 못하다. 곪아가고 있는 문제점이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예가 2011년의 꼬꼬면 열풍이다.

꼬꼬면은 이경규가 개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끈 라면의 한 종류이다. 하얀 국물 라면의 원조라 불리며 현재의 허니버터칩처럼 연일 품절을 기록하는, 구하기 어려운 상품이었다. 꼬꼬면을 제조하던 식품 회사 팔도는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맞추고자 막대한 돈을 들여 공장을 증설했다. 그러나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그 열기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하얀 국물의 행진은 그것으로 마감이었다. 그 이후로 꼬꼬면은 라면 시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정말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꼬꼬면을 제조하던 팔도와 이를 따라 하얀 라면을 개발한 많은 회사들이 손해를 보았다.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 무리한 사업을 한 기업들의 잘못도 있지만 아마 그런 열풍이 처음이라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일 덕분에 현재 허니버터칩의 공급량은 일정하다. 허니버터칩의 제조회사인 해테제과는 아직까지 공장 증설의 계획이 전무하다고 한다. 열기가 언제 식을지 전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의 뼈저린 경험 덕분에 더 이상 생산자의 입장에서 손해를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문제점들이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 기업들은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탈이 난다면 그 대상은 앞으로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허니버터칩을 비롯하여 올 한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온 제품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광고가 아닌 SNS를 통한 입소문으로 인기 상품 대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광고를 믿지 않는 ‘똑똑한’ 소비자들은 주변 SNS 친구들의 권유로 물건을 샀다. 혹은 블로그 게시물들을 보며 소비를 결정했다. 합리적인 결정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당신이 본 SNS나 블로그의 게시물이 광고성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글들이었을까?

아니, 아마 그것들은 오히려 교묘한 광고들이었을 것이다. 쉽게 속지 않는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기업들은 한층 더 ‘똑똑한’ 광고를 낸 것이다. 허니버터칩을 인증한 연예인들의 SNS 사진들, 마이보틀에는 무엇을 담아도 잘 어울린다고 추천한 블로그 이웃들의 글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인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그 효과는 굉장했다. 과거에는 없었던, ‘과자의 품귀’라는 새로운 현상이 SNS와 블로그의 궤도에 얹혀 새롭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SNS와 블로그의 친숙한 (광고성) 글들을 믿는 ‘똑똑한’ 소비자들을 겨냥한 기업들의 전략이 쏟아질 것이다. 허니버터칩의 사례 하나만 보더라도 대중의 변덕스러움과 우매함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허니버터칩이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국산과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굉장히 거셌다. 외국 과자들에 비해 포장은 과했고 양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허니버터칩이 나오고 그러한 주장들은 눈 깜짝할 새 사라져버렸다. 기업들이 보기에 대한민국 소비자는 마치 어린 아이와 비슷할 것이다. 떼쓰며 울고불고하는 아이 역시 사탕 하나만 물려주면 잠잠해지니 말이다.

소비는 어디까지 개인의 자유다. 타인의 소비성향을 대놓고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비행태는 언제까지나 절대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이러한 소비문화가 지속되다가는 물품의 절대적인 질 향상은 없을 것이다. 새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제품을 더 좋게 만드는 것보다, 유명 CF스타를 출연시켜 광고를 찍는 것보다 파워 블로거 몇 명을 고용해 게시 글 몇 개를 쓰게 하는 편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품귀현상을 보이는 장난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후 글을 마치려 한다. 장난감을 사기 위해 개점 전부터 줄 서서 기다리고 또 장난감을 향해 달려가는 학부모들의 모습에서 어버이의 희생보다 오히려 괴기함이 느껴진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는 점은 인정한다. 부모님들이 아니면 어느 누가 아이를 위해 추운 겨울날 아침에 벌벌 떨며 장난감을 기다리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소비자의 자세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들이 자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행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율의 감소는 외동아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 그릇된 소비교육까지 더하면 한국판 ‘소황제’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느 시기든 분명히 유행은 존재한다. 유행을 따라가려는 인간의 본성 심리가 있기에 유행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지나침은 문제가 된다. 레밍이 집단을 따라, 우두머리를 따라 이동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단으로 뭉쳐 다녀야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포식자들의 위협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다 같이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는 모습만큼은 확실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올바른 소비문화는 강력한 국가 경쟁력이고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다. 합리적인 자본의 이동은 산업의 투자 방향을 잡아주고 중요한 분야의 개발과 발전을 이끌어 줄 테니 말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소비는 분명 미덕이고 우리가 가장 손쉽게 행할 수 있는 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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