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후기

나의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꽤 있어 글을 자꾸만 쓰게 된다. 부족한 글솜씨이지만 꾸준히 봐주는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11월 한달동안 산부인과를 돌았다. 산부인과 도는 내내 하루하루 카운팅을 하며 지냈다. 그만큼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서울 산부인과는 대부분의 인턴이 돌게 되는 턴이다. 산부인과는 내과, 외과, 소아과와 더불어 필수턴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강릉 산부인과를 가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무조건 서울 산부인과를 돌게 되어 있다.

서울 산부인과의 파트는 분만, 병동, 마취, 수술장으로 나뉘어있다. 순서대로 2명, 1명, 1명이 배정되고 나머지 5명은 수술장을 맡는다. 나는 이 중 수술장 인턴 중 한명을 맡고 있다. K로젯을 주로 쓰는 산부인과이고 그 중에서도 K1의 인턴이다.

수술장 인턴의 하루 일과는 ‘넣빼’와 스크럽으로 이루어져 있다. ‘넣빼’는 말그대로 환자를 수술방에 넣고 빼는 것을 말한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넣빼’는 오후 7시에 다다라서야 끝이 난다. ‘넣빼’만이 주된 인턴잡이 있는 턴에 비해 산부인과는 환자를 수술방에 넣고 모든 준비(소핑 및 드랩)를 하고 스크럽까지 선 후 수술이 끝나면 환자를 빼는 것까지 인턴이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수술 환자를 챙겨야 하고 모든 수술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규 근무시간이 12시간이라면 타과의 경우 수술 파트 인턴을 써먹는 일이 8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할텐데 산부인과는 12시간 중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알차게 인턴을 써먹는다.

물론 SA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시긴 하지만 함께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적응기가 지난 3, 4주차 때는 혼자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했지만 적응이 미쳐 덜 된 1, 2주차 때는 실수할까 두려워서 매우 망설이며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1주차 목요일, 금요일 마취과 학회가 아니었다면 더 힘들었을 산부인과다.

산부인과 돌기 전까지 나는 12시간이라는 시간이 참 금방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수술방에 서서 림프절을 다 까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LN dissection 및 bleeding control을 하다보면 2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Operator 입장에서는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가만히, 혹은 힘들여 지켜보는 인턴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operator가 수술방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찌어찌 12시간의 수술방 일과가 끝나고 나면 3일에 한번꼴로 찾아오는 당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산부인과의 당직은 크게 신3 병동 당직과 분만장 당직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다른 여타 병동 당직과 마찬가지로 병동에서 오는 콜을 받으며 병동 업무를 하면 된다.

분만장 당직은 분만장만을 지키면 되는데 인턴 업무가 일반적인 병동 당직 인턴과 조금 다르다. 분만장에서 하는 특이한 인턴 잡으로는 PCA mixing, Epidural anesthesia(일명 무통주사) assist, 입원환자 리스트 관리(날짜 튕기기, I/O, lab update), 그리고 C-sec(제왕절개) 수술 준비 및 스크럽 등이 있다.

한달동안 분만장 당직을 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C-sec이다. 각 인턴마다 보통 3~4번의 분만장 당직을 하게 되는데 당직 중에 C-sec이 없었던 인턴들도 많다. 하지만 나의 내공 때문인지 나의 경우에는 3번의 분만장 당직 동안 총 4번의 C-sec이 터졌다. 심지어 첫 분만장 당직 때 연달아 2개를 했고 그래서인지 다음날 몸살이 났다.

C-sec이 인턴에게 있어 스트레스인 이유는 일단 그 상황 자체가 상당히 어색하기 때문이다. 당직 때 수술방이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응급하다는 뜻이다. 또한 자궁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의 산모이기 때문에 출혈 위험성도 높을 뿐 아니라 산모와 아기 두명의 인간을 신경써야하니 수술하시는 교수님도 꽤나 예민한 상태에서 메스를 드는 경우가 많다. 다른 수술과 달리 C-sec의 경우 수술 과정에서 인턴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인계 텍스트 및 동영상이 따로 전해내려올 정도로 인턴 입장에서도 신경쓸 것이 많다. 총 4번의 C-sec 중 두번이 twin 이었다. 남들은 당직하는 동안 할까말까한 C-sec을 4번이나 했으니 분만장 당직에, 그리고 산부인과에 진절머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산부인과 한줄 요약하자면 너무 힘든 한달이었다. 매일 저녁 7시에 퇴근하면 10시 이전에 잠에 든 것 같다. 잠들면 옆에 있는 룸메가 자꾸 나를 괴롭혀서 깨웠는데 그게 너무나도 싫을 정도로 힘든 한달이었다(이제 룸메가 산부인과니깐 내가 괴롭힐거다).

다음달에는 시험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편안한 소아중환자실 인턴이고 또 시험 전주가 휴가이기 때문에 행복한 한달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긋지긋한 인턴 생활도 이제 3개월이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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