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을 잃은 교수의 부권주의(paternalism)
의정갈등 4개월째, 서울대 교수 비대위는 무기한 휴진을 선언하였다가 철회하였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교수들은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를 출범하였다.
4월 말, 서울신문에서 나를 초청하여 작은 간담회를 열었다. 기사에 실리지는 못하였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권용진 교수는 이 갈등 속에는 3가지의 부권주의(pateranlism)가 자리한다고 밝혔다. 의사에 대한 정부의 부권주의, 환자에 대한 의사의 부권주의, 마지막으로 전공의에 대한 교수의 부권주의이다. 이 글에서는 이 중 마지막, 전공의에 대한 교수의 부권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부권주의는 가부장주의, 온정주의로 일컫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족 모델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명령하고 규제하는 것이 부권주의이다. 권력을 가진 강자는 약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약자를 지배하며 권력의 상하관계를 정당화 한다. 롤즈는 『정의론』에서 부권주의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으로 ‘당사자들이 사회 속에서 그들의 이성과 의지가 갖는 연약함과 불확실성에 대비해서 원초적 입장에서 부권주의의 원칙들을 받아들인’ 때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교수들이 전공의들에 대해 부권주의를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공의들 스스로가 그들의 이성과 의지가 연약하고 불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전공의는 교수에 비해 확실히 연약하고 불확실한 약자의 존재였다. 하지만 병원을 벗어난 지금, 부권주의는 효력을 잃었다.
2024년 3, 4월까지만 해도 이러한 부권주의의 효력이 남아있었다. 2월 20일, 물리적으로 병원을 벗어나긴 했지만 그간 병원에서 지내왔던 습관이 관성처럼 남아있어 많은 전공의들이 교수의 행보에 귀를 기울였다. 부권주의 아래에 있었던 전공의들은 교수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교수들이 이 사태를 잘 해결하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전공의들의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 믿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그토록 존경했던 우리 교수님’은 계속해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제 끝났으니 돌아와라’, ‘정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니 수련을 마쳐야 하지 않겠냐’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공의들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으며 부권주의는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 같은 입장인 줄로만 알았던 교수들이 사실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거대한 유람선에 앉아있는 ‘중간관리자’이자 부권주의 아래에서 나를 지배하던 권력자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2024년 6월 22일 청년의사에서는 <의대증원 철회보다 ‘말 잘듣는 후배’의 귀환 바라는 선배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었다. 이 사태 후 훗날 두고두고 회자될 기사라고 생각된다. 이 기사에서 전공의들은 한 목소리로 ‘전공의 보호’를 내세운 서울의대 교수들의 휴진, 그리고 철회를 강하게 비판한다. ‘전공의 보호’가 아닌 잘못된 의료 정책, 의대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공의를 보호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상은 ‘말 잘 듣는 후배의사들이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주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이 갈등이 단순히 의사와 정부 사이의 갈등이었으면 조기에 봉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 부권주의가 효력을 잃어버린 지금, 더이상 전통적인 모델의 교수-전공의 관계는 없다. 아직까지 이 사실을 올특위를 꾸린 의협 집행부와 교수들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