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어릴 때 칭찬을 참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3명과 함께 살았는데, 집안에 어른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칭찬을 들을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남김없이 다 먹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잘 정리하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잘 버리는 등 아주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좋은 말을 듣곤 했습니다. 저는 저의 행동을 했을 뿐인데 그 자체로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칭찬 듣기를 좋아하는 착한 아이로 자라왔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좋은 소리를 듣고 싶었고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욕구가 강했습니다. 허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칭찬을 듣는 횟수는 차츰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아마 칭찬을 받게 되는 기준이 높아진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훌륭한 행동들은 점차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갔습니다. 덧셈만 잘해도 칭찬을 받던 5살 꼬맹이 시절과는 달리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만 칭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매번 칭찬을 갈구했습니다. 어린 시절 늘 귀에 맺히던 것이 칭찬이었던 탓에 칭찬과 점점 멀어져야 할 시점에도 칭찬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칭찬을 듣는 것이 행동의 모든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팀 과제가 있다면 늘 앞장서서 팀을 이끌어갔고, 남들이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먼저 나서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라왔고 사회도 그런 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러운 저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칭찬을 불러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의 칭찬에 맞추어 저의 행동이 결정되었습니다.

신문사 편집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한 생각은 늘 ‘내가 좀 더 고생하지’였습니다. 물론 제가 진짜 더 고생해야만 하는 상황도 많았지만 그 기저에는 늘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에게 솔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말을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이 힘든 것 보다는 내가 힘든 것이 나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바람직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제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처사였습니다.

처음 편집장을 할 예과 시절에는 열정이라는 마취제에 취해 그러한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열심히’가 제 삶의 모든 것이었고 그 열심히 한 모든 것들을 타인의 칭찬으로 보상받았습니다. 그 칭찬들이 어린 시절의 칭찬과 비슷한 ‘건강한 칭찬’이라 믿었고 내면의 고통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칭찬에 중독되어 살아갔습니다. 그 칭찬 한마디를 듣고자 계속해서 제 마음을 깎아내려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로 편집장을 할 때에는 마음이 계속해서 아파왔습니다. 어딘가 계속 불편했습니다. 그 원인이 궁금했지만 정작 편집장을 하는 순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편집장의 가면을 벗은 지금에서야 타인의 칭찬에 맞추어 살았던, 그래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제 모습이 눈에 훤하게 보였습니다. 그동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이 헤매고 나서야 제가 그리워했던 어린 시절의 칭찬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행동에 대한 보상의 형태로 얻어낸 것 아닌,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칭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오롯이 저에게 집중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관여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타인의 칭찬에 의해 평가가 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가치를 쌓아나가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태껏 참 잘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두 번의 편집장을 끝냅니다.

카테고리: My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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