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관하여 (2)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싫고
불합리한 일을 잘 견디지 못하고
옳은 일은 옳다고 말하는 성격
잘 나서거나 튀는 성격이면의대는 좀 많이 힘들겁니다.
의대 입학 전, 수능 수험생 사이트(오르비)에서 위와 같은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너무나도 인상 깊어 옛 블로그 한 구석에 모셔놓았었다. 굳이 애써서 블로그에 옮겨놓은 건 저 글을 다시 보았을 때 나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최근에 블로그를 정리하게 되면서 저 글을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렸다. 신입생 시절의 ‘나’와 이제 의과대학 실습을 준비하는 본과 3학년의 ‘나’, 과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저 글에 따르면 나는 ‘의대는 좀 많이 힘들어 해야할’ 사람 쪽에 가깝다.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싫어서 의대에 왔고(‘그런 것’이 의대가 더 심할줄은 입학 전에는 몰랐다) 불합리한 일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생각이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매번 그렇지는 못하지만) 옳은 일은 옳다고 말하는 성격이며, 잘 나서거나 튀는 성격임은 거의 확실하다.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 의견만큼은 언제나 뚜렷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예과 2년, 그리고 본과 2년을 지내면서 솔직히 말해 의대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공부량이 많아서 다소 숨이 찬 적은 있었지만 저 글대로 수직적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의대가 싫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수직적 인간관계를 지양하고 수평적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학교는 아니다. 과거에는 의대 군기 3대장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최근에는 부조리한 일들로 인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저 글을 강하게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 글은 완전히 틀린 내용이라고 반박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나의 부정에 확신이 들지 않는 이유는 병원 실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따뜻한 강의실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정보와 지식만이 담긴 프린트물과 싸우는 것이 내 의대 생활의 전부였다. 앞으로 2~3주 후에는 정말 병원에 나가게 된다. 병원 실습 역시 위 글이 말하고 있는 ‘의대’에 포함되기 때문에, 또 의과대학의 목표가 어쩌면 병원이기에, 작성자는 그 점에 중점을 두어 댓글을 작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혹시나 병원 생활을 하다가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불합리한 일을 잘 견디는’, ‘옳은 일은 옳다고 하지 못하는’, ‘잘 나서지 않고 튀는 것이 싫은’ 성격으로 바뀔까봐 두려워서이다. CD 게임을 할 때 보스몹을 앞두고 지금까지 한 것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으니 Save를 하듯, 현재의 자아를 이곳에다가 저장해두고 싶다. Save 한다고 해서 Load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과 3학년의 나’는 이랬다는 사실을 ‘병원 실습을 마친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현재의 ‘나’는 저 글을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