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과 통조림

 

어렸을 적,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 무한의 존재라 여겼다. 70억 가까이 되는 인간들 중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보다 특별함을 지닌, 적어도 특별해질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평범함이란 도전하지 않는 자들에게 붙여진 딱지라고 생각했다.

의대에서 본과는 예과와는 또 다른 사회이다. 예과가 넓디넓은 바다라면 본과는 컨베이어 벨트이다. 푸른 비늘을 가진 참치는 바다에서라면 어디든 원하는 대로 꼬리를 흔들 수 있지만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는 고작 둥그런 모양의 통조림 따위의 형태로 밖에 존재하지 못한다. 바다 속에서라면 하얀 광선을 따라 푸른 물결을 가르며 헤엄칠 수 있지만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라면 똑같은 크기, 똑같은 맛을 내는 통조림 신세로 전락한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런 통조림과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 사회 깊은 곳에 비축될 통조림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훗날, 내 몸에 바코드를 찍는다면 ‘제조일자 2016년~2019년, 원산지 춘천’ 정도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그러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통조림이 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사회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참치의 존재 이유를 통조림이라 말할 수는 없다. 매 순간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는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카테고리: My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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