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서 강릉으로

홍천에서 강릉으로

보어(Neils Bohr)와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라고 하는 세계적인 두 과학자가 덴마크에 있는 크론베르크성을 방문하였다. 성을 둘러보던 중 보어가 하이젠베르크에게 말했다. “박사님! 햄릿이 이 성에 살았다고 상상하자마자 성이 달라져 보이니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과학자인 우리는 이 성이 돌로 지어졌다는 것과 건축가의 기술과 공간배치를 평가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이 성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살던 곳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성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성 안의 마당에서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햄릿의 고민이 느껴지고, 어두운 모퉁이에서는 인간 영혼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추구했던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이 성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줍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지리학 교수인 이프투안(Yi-Fu-Tuan)은 인간이 공간과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자기의 문화를 가지고 어떤 공간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이제 그 공간이 자기에게 친숙한 곳이 될 때에...... 다시 말하면 한 번 와보고, 두 번 와보고, 세 번 와보고 또 그 장소와 배경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그 경험이 쌓여가면서, 막연한 추상적인 공간은 친밀하고 의미가 가득한 장소로 바뀌어 간다. 모든 사람은 그의 감정을 가지고 장소를 대하게 되는데 이것을 장소감(場所感, a sense of place)이라고 하고, 이 장소감은 반드시 장소애(場所愛, topophilia)를 낳는다"


마지막 주라 그런지 괜스레 싱숭생숭하고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기분이 든다. 홍천에 처음 와서 한창 활기찰 때는 일하는 중간중간 "약속처방"도 깔끔하게 다시 정리하고 이전 환자 case들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다면 요즘에는 잠을 자거나 누워서 핸드폰만 하기 일쑤이다. 기껏 정든 9주 동안 홍천에 푹 정이 들었나 보다. 정든 이곳을 떠나기 싫어 시간의 꽁무니를 붙잡고 놓기 싫은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다음주, 정확히는 이번주 주말부터 턴이 바뀌어 엄청 바빠질 것이 분명하기에 홍천 생활 매듭짓는 글을 서둘러 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3일이나 남았고 오늘마저 홍천은 나를 편하게 두지 않았지만 홍천 생활을 슬슬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두달간 인턴 아닌 인턴 생활을 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서울에서의 인턴 생활을 벗어나 판단하고 결정하는 진짜 "의사"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판단과 결정에는 늘 책임이 따랐다. 책임감이 커서 그런지(누가 그랬다) 나의 잘못된 결정에 불만을 표현하는 환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으면 꽤나 크게 타격을 입었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더라도 나의 결정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꼭 그날은 악몽을 꾸곤 했다. 겉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심적으로는 힘에 부쳤나 보다. 하지만 그 책임만큼 보람도 느꼈다. 한결 나아진 환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들을 때면, 과장님 혹은 타병원 선생님들한테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내가 기능을 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홍천 오길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물론 제발로 온거는 아니지만).

서울에서 다소 떨어진, 바쁠 것 하나 없는 홍천에 있다보니 생각도 깊어지고 몇달째 읽지 않던 책도 읽었다. 미래만 생각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긴 했지만 진로고민도 다시 해보았다. 단지 무슨 과를 가는지가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행복은 무엇일까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때마침 적절하게 내 눈에 띈 책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가장 우선시해야할 것은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지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서둘러 걱정하지 말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지 못해 괴로워하지말자는 것이 책의 요지이다. 나 역시 무식하게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류의 책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러의 심리학을 담은 이 책만큼은 요즘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병원에 비교적 나이 어린 의사가 둘밖에 없다보니 고된 일을 다 인턴이 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관심과 애정도 많이 받았다. 아직 인턴인 덕분에 간호사 선생님, 기사 선생님들과 스스럼 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심지어 매점 아주머니도 무슨 과 하고 싶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병동 드레싱을 하다보니 간병인 여사님들, 보호자 분들과도 부쩍 친해졌다. 험난한 드레싱이 끝날 때면 꼭 음료수, 아이스크림 하나씩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셨다. 두달 내내 드레싱을 하다보니 욕창 혹은 상처의 상태 변화를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잘 회복되지 않는 욕창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와중에 조금이라도 욕창이 회복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과장님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야간 당직 바쁜 시간대에 응급실을 들러 어려운 환자들을 한번 봐주기도 하고 나의 능력이 부족할 때면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물론 늦은 밤에 연락받는 거를 그다지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또 모르는 게 있으면 외래 시간에 쪼르르 찾아가서 궁금한 점을 해결하기도 했다.

사실 가장 크게 고마운 분들은 타 병원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다. 제대로 된 진단은 커녕, 제대로 된 검사도 하지 못한 채로 환자를 보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받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한번은 그 답답함을 직격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SAH를 보고 급한 마음에 의뢰서를 대충 써서 전원을 갔었는데 타병원 교수님께서 의뢰서를 보시고는 이게 얼마나 매너없는 짓인지 아냐고 엄청 화를 내셨다. 상도덕(?)에 어긋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기에 꿀먹은 벙어리 마냥 1분간을 혼나며 서있었다. 더 서글펐던 점은 그렇게 혼나고 나서도 딱히 해결방안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원대병원, 춘천성심병원, 원주기독병원 선생님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끝으로 함께 일했던 인턴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과연 이만큼 행복한 홍천생활을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좋은 사람 두명을 알게 되었고 가까워졌다. 어느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각박한 홍천 속에서 맛있는 것 같이 먹고, 기쁠 때 같이 웃고, 힘들 때 서로 다독여주며 한달, 한달을 보냈다. 떠나는 마음이 무척이나 아쉽다. 아쉽다는 것은 그만큼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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