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실습을 마치며
첫 실습을 마치며
내과 첫 실습이 끝났다. 주말 지나면 이제 새로운 과에서 새로운 교수님, 펠로우, 레지던트 분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처음 실습을 시작하며 깜짝 놀랐던 것이 있다면 바로 회진…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험난한 여정에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이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했지만 사실 무서운 마음이 더욱 컸다. 교실에서는 교수님 1명과 학생 60~80명이 마주보고 있지만 회진 때는 교수님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되니 그 압박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물론 2주차 때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좀 덜해졌지만…
처음 병원생활을 하며 병원 내 위계구조가 무척이나 견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석탑과도 같았다. 그 탑에서 살짝 빗겨나가 있는 우리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눌려 첫 며칠간은 잔뜩 웅크리며 지냈다.
신입생 시절, 오리엔테이션을 가서 놀랐던 것은 ‘투어’라는 문화였다. 각 동아리 별로(의대는 동아리가 중요하니깐…) 넓은 방이 배정되어 있고 신입생들은 각 방을 돌아다니며 준비한 춤을 추고 사발을 마시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춤까지는 추진 않지만(사발 마시는 것은 모르겠다) 어쨌든 그 형태는 그대로 남아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동아리의 선배들이 둥그렇게 앉아있다. 선배 중에서도 가장 학년이 높은 선배를 ‘왕고’라 칭한다. 왕고는 그 방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원해도 왕고가 엄한 분위기를 잡으면 그 방은 자연스레 ‘엄한’ 방이 된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들은 마치 모멸감이라도 주려는 것 마냥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기가 찰 노릇이다. 갓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단지 ‘문화’라는 이유로 수치스러운 춤을, 그것도 처음 보는,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보지 않을 사람들의 쾌락을 위해 추게 하다니.
병원 복도를 걸으며 문득 병원의 문화가 학교로 까지 전파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의과대학이니 당연히 자연스레 병원의 문화가 녹아들었겠지. 의과대학의 동아리는 병원의 각 과를 의미한다. 우리 동아리(혹은 과)로 들어오면 잘 챙겨줌과 동시에 이것저것 시키며 때로는 구박까지 준다. 다른 동아리(혹은 과)에서 우리 동아리(혹은 과)의 일원을 비난한다면 동아리(혹은 과) 사이에 좋지 않은 기류가 생긴다. 각 동아리에 ‘왕고’가 있듯이 병원의 각 과에도 ‘왕고 교수’가 있다. 교수라 하더라도 왕고 교수가 나타나면 고개를 조아리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위계질서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에게 회사 가서 상사 눈치 보고 사느니 의대를 가서 개원 후 편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매우 엉뚱한 판단이었다는 것을 나는 의과대학 입학과 동시에 깨달았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춤을 추며 이 사회는 아랫사람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선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입생 시절 느끼고 한동안 잊었던 감정을 PK를 시작하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