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호흡기내과 (feat. 나쁜 소식 전하기)
의사국가고시 실기항목 중 나쁜소식 전하기라는게 있다. 흉통, 호흡곤란 등 면담 및 진찰을 통해 질병을 찾아내어 진단 및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목표인 다른 항목들과는 달리 위 항목은 말그대로 상담을 통해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나쁜 소식"은 무엇인가 하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암이다. 표준화 환자에게 환자가 최대한 충격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 이 항목의 목표다. 나는 이 항목을 참 싫어했다. 실기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거니와 이를 점수화해서 평가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다른 항목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이 항목이 나는 가장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9월 한달 내내 나는 나쁜 소식만 주구장창 전했고 이 항목이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한달간 서울 호흡기내과에서 주치의 인턴을 했다. 홍천 응급실, 강릉 신경과를 이어 벌써 세번째 주치의 턴이었다. 이번 인턴의 역할은 폐암이 의심되어 이에 대한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무사히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대개가 단지 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했기 때문에 홍천, 강릉처럼 지금 당장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스트레스가 컸다. 검사결과를, 나쁜소식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무척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환자들은 대개 어느 정도 암일 것이라 예상을 하고 입원을 한다. 그럼에도 조직 검사를 통해 암 확진을 받는 순간 다들 적잖은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진다. 눈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사람은 없지만 다시 찾아가면 눈시울이 붉어진 경우는 여럿 봤다. 조직 검사가 대개 오후 늦게 나오기 때문에 결과를 설명하고 나면 곧 퇴근 시간이다. 전이도 없고 암 자체도 크지 않아 수술이 가능한 경우라면 비교적 마음 편히 퇴근이 가능하지만 전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전이가 심한 경우라면 면담이 어렵고 퇴근할 때의 발걸음도 무겁다.
분명 유쾌한 한달은 아니었다. 배움은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즐거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