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내과 후기
지난달 소화기내과를 돌았다. 지지난 달 호흡기내과에 이어 두달째 내과를 돈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나왔듯이 호흡기내과에서는 주치의로서 의사와 다름없는(?) 일을 했다면 이번달에는 8월달 응급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인턴이 해야할 일을 하였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GI)는 크게 세 파트로 구분된다. GI a, b, c라 칭하는데 각각 간, 담췌, 위장관 파트를 뜻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지). 나는 GI b 파트에 속한 인턴이었고 그 중에서도 메인 병동이 아닌 다른 병동에 속한 환자들(GI b extra)을 맡았다. 이 말이 골 때리는게 뭐냐면 내가 담당해야할 환자는 이 넓디넓은 병원 어디에든 입원할 수 있다는 뜻이다. GI b 메인 선생님이 두 병동만을 맡는 데 비해 내가 돌아다녀야할 병동은 10개 가량되었다. 이 10개가 같은 관에 있거나 같은 층에 있으면 모를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각각 퍼져있다. 내가 다녔던 병동만 기억나는대로 얼추 적어보면 72, 85, 91, 93, 96, 113, 114, 124, 133, 143, 163, 174, 183 정도이다. 이렇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할 일이 ‘동선 짜기’ 이다. 최대한 같은 관에 있는 병동을 몰아가거나 같은 층에 있는 병동을 몰아가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대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서를 택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동선이 꼬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이제는 그마저도 고려하여 동선을 짠다.
똑똑하게 계획적으로 병동을 누려도 하루에 못해도 15,000걸음은 걷는다. 하루는 GI b 메인 병동(83, 134)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오전 10시에 갑자기 전원을 가야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 25,000 걸음을 걸었다. 차라리 수술방에서 서있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인 11월 실제로 하루 종일 수술방에 서있는데 그냥 돌아다니는게 낫다;;).
GI b extra의 환자 특성상 단순 초기 work up을 위해 입원한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의 60% 가량은 동의서 받기(그중에서도 대다수가 CT, MR 을 제외한다면 ERCP, EUS)였고 나머지 35% 가량은 PTBD, ENBD irrigation 이었다.
많이 걷는 것 말고는 크게 어렵지 않았던 한달이었다고 생각한다. 쇄석실 킵도 이때 아니면 언제 즐겨보겠냐는 심정으로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일도 크게 어렵지 않았고 함께 내과를 돌았던 인턴 선생님들도 좋아서 즐거운 한달이었다. 딱히 인상 깊은 일이 없어 글로 남길만한 것도 별로 없다.
ps.: 내 파트가 extra라 그런지 거의 동네북 수준으로 뻘콜을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ERCP 검사를 받는 호흡기내과 환자 동의서를 받아달라고 나한테 전화주신 병동도 있었다. 사실 이 정도는 상당히 애교고 그냥 한달내내 뻘콜에 시달려 인성이 불안정해졌다. 여기다가 어디라고 언급하긴 좀 그렇지만 특정 병동 때문에 진짜 한달 내내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