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1년차 절반
3, 4, 5, 6, 7, 8… 8월 중순, 1년차 절반 정도가 지났을 무렵 드디어 첫 휴가를 가게 되었다. 근 반년간을 병원에만 묶여 살았다. 퇴근해서도 EMR을 열어보며 이 환자의 앞으로 plan이 잘 세워져 있는지, 빼먹고 쓰지 않은 의무기록은 없는지, 내일 meeting 때 할 발표 준비는 다 되어있는지 등등 쳇바퀴 같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도망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숨이 턱끝까지 찰 만큼 많은 양의 일이 주어진 날도 많았고 별 탈 없이 하루가 마무리 되는가 싶다가 퇴근할 무렵 갑자기 일이 터지는 날도 많았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어찌어찌 고비를 넘겼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학생, 아니 인턴 때까지만 해도 빈 시간이 생길 때면 글과 그림을 남기던 나였다. 올해도 몇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시장 선거 하는지를 선거일 3일 전에 알았고 올림픽이 개최되는지를 개막식 당일날 알았으니 일과 휴식 외 모든 것은 뒷전이었다. 다만 이번주 휴가이고 하니 뭐라도 남기지 않으면 훗날 나의 1년차를 회상할 수 없을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다.
올해부터 다시 신경과 모집인원이 2명으로 줄게 되면서 현재 1년차는 나와 다른 친구 한명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반년을 보냈고 어느 누구 하나 그만두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그동안 내 입에서 정말 많은 한숨과 한탄, 후회 등이 밀려 나왔다. 아침 하루는 한숨으로 시작하기 일쑤였고 점심 무렵에는 왜 이렇게 사냐며 한탄을 하였고 저녁에 퇴근하면서는 다른 과를 가면 좀 더 편했을까 하며 후회의 말을 하였다.
사실 한숨, 한탄, 후회가 순도 100% 짜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렇게라도 나쁜 감정을 풀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어서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과를 선택했었더라도, 다른 길로 향했었더라도 비슷한 한숨, 한탄,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과를 갔었더라도 힘듦이 기저에 깔려있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고 오히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신경과를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했을 것이다.
단순히 신경과 의사를 하고 싶어서 신경과에 온 것은 아니다. 신경과 의사 이상의 그 무엇을 하기 위해 신경과를 선택했다. 물론 지금은 한없이 무기력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1년차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꼭 그런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ps1. 사진은 휴가 첫날에 간 포천 낚시터의 저녁 풍경
ps2. 마지막은 신경과 책에서 본 (나에게만) 재밌는 문장 한마디…
When examining the patient with Broca’s aphasia, the patient often feels frustrated, while when examining the patient with Wernicke’s aphasia, the examiner may feel frust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