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생각 정리
정부는 2월 초 의대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를 발표하였다. 이는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직격탄을 맞은 전공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부가 발표한 ‘2000’이라는 숫자와 필수의료패키지에 담긴 내용들은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하나둘 사직행렬이 이어졌다. 힘들고 긴 전공의 과정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줄이 끊어진 것이다.
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시작했다. 2020년 인턴을 시작하여 2024년 2월 신경과 전공의 과정 3년차를 마쳐갈 즈음이었다. 4년차는 어떻게 보내야할까, 새로운 1년차는 어떻게 가르쳐야할까 등의 고민과 더불어 전공의 과정의 마지막 1년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오산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나의, 우리의 지난 전공의 생활을 모두 부정했다. 그저 제 밥그릇 채우기 급급한 파렴치한으로 몰렸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망각한 도둑놈으로 몰아갔다. 사명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의사놈들이라고 걷잡을 수 없는 욕설을 해댔다. 내가, 우리가 정말 그렇게 욕을 먹을 정도로 잘못을 했던가. 전공의가 한 유일한 잘못은 환자진료에 집중하느라 그전까지 의료정책에 집중을 하지 못했던 것 뿐이다.
신경과는 중증과 응급을 동시에 다루는 과목이다. 대표적인 질병이 뇌경색, 흔히들 중풍이라고 알고 있는 질병이며 어떠한 이유로 혈관이 막혀 뇌에 적절한 혈액의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신경은 그 회복이 굉장히 더디고 어려운 기관이다. 피부와 다르게 신경이 한번 손상을 받으면 병전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한 상황에서 뇌경색으로 인해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를 본 신경과 의사는 1분 1초가 너무나도 초조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검사와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주변 의료진을 재촉했다. 잘못된 판단을 내려 환자에게 해를 입힐 뻔한 후배 전공의를 나무라기도 했다. 이송직원 분들이 늦게 호출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혼자 침대를 끌었다. 불과 몇초 차이로 인해 이 환자가 1년 뒤에 걸을 수 있냐, 말을 할 수 있냐 가 너무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늘 과정을 복기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환자의 예후가 좋지 못하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떻게 하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였다.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하는 경우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몇날 며칠 잠을 자지 못하고 점심저녁을 굶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경과 환자가 있으면 그에 걸맞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을 살아왔고 이게 옳은 삶이고 진정한 의사 인생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미래에 멋진 신경과 의사가 되어 아직까지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신경계 질환을 정복하는 것이 내 인생 최대 과제라 생각하고 있었다.
2024년 2월을 기점으로 내 꿈은 산산히 부셔졌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이미 악마가 되어버렸다. 치료 과정에 있어 의사-환자 관계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환자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하고 의사는 그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해야한다.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다음 단계가 진행이 된다.
이번 일을 기점으로 그런 신뢰는 모두 사라졌다. 혹시나 다시 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날이 있더라도 더이상 환자를 위해 주변 의료진을 재촉하지도, 후배 전공의를 나무라지도, 혼자서 침대를 끌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