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한달 동안 고려대학교 뇌공학과 대학원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 연구실 교수님 및 우리병원/고려대 안암병원 교수님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한달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작게나마 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이룩하고자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작 1개월 남짓 시간 밖에 있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컨셉만 잡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1월 6일 월요일 교수님을 간단히 뵙고 난 이후에 연구실에서 맥 컴퓨터를 1대 받았다.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처음 보는 맥 컴퓨터에 적응하느라 수 시간 정도 헤매었으나 이내 곧 적응하여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서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을 하며 PSG 판독을 위한 파이썬 코딩을 하고 난 이후에 코드를 접하는 것은 또 오랜만이라 Visual studio code 를 다운로드 받고 다른 사람의 Git hub 에 들어가서 코드를 다운로드 받아서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날에는 대학원 선생님들이 작업하고 있는 전동휠체어, 로봇 팔 등을 구경할 수 있었다. 머리에 뇌파를 부착하고 구글 AI 글래스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서 수동 조작 없이 물컵이 있는 곳까지 나아가 로봇 팔을 이용하여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해하며 보았고 그 원리가 궁금하여 대학원 선생님께 여쭈어보아 그때 처음으로 Brain-computer interface 의 큰 줄기를 알게 되었다.

그 다음 며칠간은 BCI 에 대한 탐구의 연속이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커뮤티니 글부터 시작해서 누군가가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Review article 그리고 실제 BCI 를 이용하여 EEG data 를 분석한 논문 및 관련 코드들을 살펴보았다. MI, SSVEP, P300 등의 BCI 들이 많이 쓰이며 Lab 에서도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 코드들을 짜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우리병원의 실제 뇌파 데이터를 가지고 과연 BCI 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Stellate reviewer 에서만 보던 뇌파를 과연 파이썬 코딩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부터 테스트해보기로 했으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아직 내가 뇌파 데이터 format 을 온전히 숙지하지 못한 것이 그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는 뇌파 데이터 파일의 확장자명과 Lab 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확장자명이 달랐던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고 앞으로 이 일에 전념해야할 자리였다면 좀 더 파고들어갔을텐데 나는 지금은 우선 여기서 멈추기로 하였다. 충분히 원하는 수준의 컨셉을 익혔고 지금 한발짝 더 나아간들 당장 바뀌는 것은 없기에 이번 한달은 개념을 습득한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큰 성과이지 않나 싶다.



나는 학생 때부터 Engineering 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느꼈고, 신경과 의사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그러한 한계를 다른 과 의사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물론 종양내과, 류마티스내과 등에서도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많지만 나는 그것보다 한번 고장나거나 퇴화된 신경과 뇌를 되살리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학적으로는 그러한 방법이 없다. 그저 약물로서 퇴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고장이 조금 덜 나게 해줄 뿐이며 그러한 치료를 마치고서는 결국 환자는 재활의학과로 보내진다. 재활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빈약한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신경과 의사로서 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Steroid, Immune-therapy 등의 치료가 끝나면 재활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재활의학과로 환자를 넘겨버리는 그런 것 말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Locked in syndrome 환자가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서 걷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보호자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Gullain-Barre syndrome 으로 인해 Quariplegia 와 함께 Ophthaloplegia 까지 동반된 환자가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의료진과 가족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결국 그 해결책은 의학이 아닌 공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예과 1학년 처음으로 C언어책을 펼쳤던 이유이며 한겨울 월세 19만원짜리 방에서 2개월간 생활하며 프로그래밍을 익혔던 이유이기도 하며 학생 시절 짧은 방학을 틈타 여러 대학 연구실을 기웃거렸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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