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신경과 주치의 02

강릉 신경과 끝 – 서울 복귀

강릉 신경과가 끝났다. 이전 게시글을 보니 첫 두주가 참 처참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약이 뭔 약인지도 모르고, 이 환자가 어떤 환자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EMR도 못다루고 말이다.

나름 성의를 다해서 인계를 해주고 오긴 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인계라는게 한달동안 그 일에 익숙해진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전달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번달 극초반 내가 느꼈던 좌절감과 절망감을 다음 인턴 분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훌륭하기에 분명 씩씩하게 잘해낼 것이라 믿는다.

이전 글을 아마 두번째 주말 당직을 앞두고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썼었다지… 그 당시 느꼈던 두려움에 비해 그날 당직은 순탄히 넘어갔다. 그 이후로 몇몇 굵직한 사건을 제외한다면 한가로운 3주를 보냈다.

1) TFCA 이후 CRAO가 생긴 할아버지
2) 도파민, 노르핀 주렁주렁 매달고 간 transfer
3) OBY op. 이후 발생한 Infarction
4) 퇴원 원치 않아 병동에서 난동피운 아저씨
5) Multiple infarct으로 HD#2만에 expire한 할아버지
6) 액정 다 깨먹어 새로 산 휴대폰…에 사은품으로 온 샤오미 스피커가 너무 좋았다는 점

(하나하나 자세하게 쓰고 싶지만 일단 개인 일기장에만 적어놓는 걸로)
특히 (1) 환자는 강릉신경과 마지막날 퇴원 이후에 외래 진료 보러 왔을 때 마주쳤는데 마음이 좀 쓰렸다. 보호자인 할머니께서 입원 중에도, 그리고 어제도 계속해서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다. 심지어는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것 같다 하시며 두유도 챙겨주셨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몸은 홍천도 떠나고, 강릉도 떠났지만(물론 내년에 다시 갈 것 같다) 홍천에서의, 강릉에서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대학시절부터 이어져오던 지긋지긋한 강원도와의 인연이 당분간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지 않을까 싶다.


주치의를 하다보니 별별 경험을 다해본다는 생각이 든 지난 3개월이었다. 만약 내가 임상과를 한다면 평생을 이런 경험을 하며 살겠지 싶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분명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혼돈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그덕분에 딱 한가지 분명해진 것도 있다. 꼭 신경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환자가 단번에 좋아져서 완쾌하는 보람은 전혀 없다. 뇌졸중은 역학이라는 교수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그저 다음번 뇌졸중이 오지 않게 risk factor를 교정하고 급성기를 잘 넘기는 것이 지금의 표준 치료이다. 아직 어린 생각이지만 다음 세대의 표준 치료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수동적인 접근을 벗어나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강릉 신경과 당직 첫날, 워낙 내공이 나빴던 나 덕분에(난 첫날부터 tPA를 써야하는 환자가 올 줄 상상도 못했다) 일요일임에도 병원에 살다시피하셨던 교수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교수님이 왜 신경과를 하고 싶냐고 물으셨고 나는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고 답했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음에도 교수님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며 본인이 연구하는 자료를 이것저것 보여주셨다. 보통 교수님들은 한귀로 듣고 흘리셨을텐데 말이다. 물론 이 덕분에 내 꿀같은 휴식시간 한시간을 빼앗기긴 했지만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마지막날 인사드릴 때 신경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과 함께 떨어지면 본인 밑으로라도 들어오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솔직한 말로 그런 일은 안 일어나면 좋겠다(?);; 그냥 나중에 학회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3개월 간의 혼란스러운 여정 글을 마무리 한다.

카테고리: Med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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