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01

홍천 응급실에서 인턴의 역할은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다. 짧으면 5분에서 길면 6시간까지,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응급실을 떠나는 가까운 미래까지 책임을 진다. 6년간의 의대 공부를 끝마치고 2개월 간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지만 홍천에서의 일은 이전까지의 배움과 경험보다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대체로 현실적인 문제가 그러한 것들이다.

1. Fever

종종 아니 자주, 무증상으로 단순히 열이 난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 배운대로라면 이것저것 검사를 통해 fever focus를 찾는 것이 맞겠지만 현재 사태를 반영한 병원 규정상 열이 나면 일단 영상 촬영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음압격리실에서의 문진과 진찰, 피검사가 전부이다. 이 정도의 행위만으로 열이 나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리가 없다. 홍천 응급실에서의 프로토콜은 뭐 하나라도 얻어걸린 증상이 있다면 그거에 대한 대증치료 및 해열제 투여 후 익일 외래 f/u이 전부이고 최선이다.

2. 보호자

단 한번도 보호자에 관한 이슈에 대해 수업시간에 배우거나 교과서에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호자 유무가 제일 중요하다. 특히 의식이 없거나 치매가 있거나 drunken state일 경우에 보호자를 찾는 것이 빠른 시간 내에 해야할 일 중에 하나이다. 보호자를 찾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환자의 핸드폰에 있는 모든 연락처에 전화를 걸며 제발 한 사람만이라도 전화를 받아주기를 기원한다. 거리상 당장 올 수는 없더라도 연결만 되면 일단 된 것이다. 모든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단 한명도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치매 간병에 지쳐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3. Transfer

항상 타 병원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타 병원 트퍼 arrange 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일단 전화기를 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응급수술 및 응급처치가 불가능한 병원 특성상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예후가 불량할 경우로 판단되는 경우 바로 트퍼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brain hemorrhage가 그러하다. Head trauma로 올 경우 바로 brain CT를 찍는다. 출혈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내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출혈이 뻔히 있을 상황이라는 것을 경험상 대충 안다. 뇌출혈이 있을 경우 어쨌든 트퍼 arrange를 한다. 최대한 NS스럽게(?) 노티를 해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아직까지 너무 어렵다. 특히 첫주에는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노티를 해야되는지 몰라서 한참 헤맸다. 서너번 하다보니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질문들이 예상이 가고 이제는 어느 정도까지는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5까지 말하면 7을 요구하고 7까지 말하면 9를 요구하기에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도 어찌어찌 환자를 받아주는 타 병원 의사선생님들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4. Drunken

제일 곤혹스러운 경우가 술 취해서 오는 환자들이다. 본인이 술취했다며 걸어들어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행인에 의해 신고되어 119에 실려온다. 전자의 경우 나의 예후가 상당히 좋다. 일단 말이 통하면 검사를 진행할 수 있고 큰 문제가 없다면 수액 달아주고 응급실에서 주무시게 한 다음 아침에 깨워서 집에 돌려보내면 된다. 하지만 119에 의해 응급실에 들어오는 drunken state의 환자들은 모든 악(惡)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다. 첫째로 보호자를 찾기 힘들며, 둘째 trauma(특히 head)가 있는 경우가 빈번하며, 셋째 의식이 alert하지 못하다. Head trauma가 있는 경우가 정말 당혹스럽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있으면 필히 속에도 출혈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brain CT를 찍고 싶은데, 아니 찍어야 하는데 협조가 안된다. 이 때 포기하면 안된다. 딴 건 몰라도 brain CT만큼은 꼭 찍어야 된다. 최근에 너무 협조가 되지 않아 포기할까 하다가 환자가 깊게 잠든 틈을 타서 얼른 찍었는데 여지껏 홍천와서 본 SDH 중 가장 큰 SDH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어쨌든 출혈이 있으면 트퍼를 보내야되는데 보호자를 쉽사리 찾을 수가 없다. 그럼 환자 휴대폰을 뒤적거려서 열심히 전화를 돌려야 한다. 트퍼 노티를 할 때에도 어려움이 많다. 환자 underlying이 무엇이 있는지, 혹시 어느 병원 f/u인지 등등을 여쭤보시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단지 brain CT 결과만을 가지고 말씀을 드려야 한다.

5. 그래도…

절반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그래도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사실 매일매일이 흥미진진하다(?). 근무하는 하루하루를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만 귀찮기도 하고 환자 개인정보 문제도 염려되어 나만 볼 수 있게 끄적끄적 적어 놓고 있다. 같이 응급실을 지키는 간호사, 기사 선생님들도 너무 좋다, 과장님들께도 노티 전화드리면 크게 뭐라하시지 않고 조곤조곤 알려주신다. 적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전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두세번 정도만 할 줄 알았던 suture도 이미 십수회 정도 했고 환자 보는 법, 환자와 대화하는 기술도 많이 는 것 같다.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이라 확신이 들기에 오랜만에 글을 남겨본다. 다음 글은 5월 말 혹은 6월 초에…

카테고리: Med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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