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The Alechemist) – 자아의 신화 “Personal Legend”

이번 휴가는 유달리 길게 느껴진다. 1년차 시절 두번의 휴가가 온통 휴식을 취하기에도 모자랐다면, 이번 휴가는 나름의 반성 혹은 내성(內省)이 곁들어진 시간이었다. 페이스북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았던 토막글들을 나의 홈페이지에 각자의 시간에 맞게 채워놓았고(워드프레스는 글의 발행일을 직접 지정할 수 있어 현재의 글을 과거의 날짜로 등록할 수 있다) 짧게나마 전공지식을 공부하였으며 굉장히 오랜만에 파이썬 코딩을 하였다.

휴가 직전 ‘재미없는 삶’에 대한 짧막한 푸념글을 남겼다. 주변 사람들은 주어진 삶이 너무 바쁘고 고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다른 재미를 찾을 여유가 없으니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꿈많던 소년 시절은 벗어난지 오래이고 사회의 때가 온몸 구석구석 벤 상태라 예전의 ‘재미있는 삶’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라고 믿었다.

이번달 병원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검사 raw data 를 의학적 용어로 해석하여 결과를 내는 것이다.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이게 굳이 신경과 의사가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단순 수치 비교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주먹구구 식의 숫자 비교가 전부이고 그 결과에 따라 영어 문장 몇개만 쓰면 되는 작업이다. 이걸 왜 내가, 아니 사람이 해야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단순 노동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짧게 코드 몇줄을 작성해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시간 남짓 걸려 코딩을 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최근 몇년 간 느끼지 못했던 집중력을 느꼈다. 심지어 파이썬 버전/호환 등의 문제로 인해 예전에 세팅해놓았던 개발환경 등을 다 지워버리고 새로 깔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음에도 단 한번의 짜증 없이 간단하게 코딩을 끝마쳤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이전에 했던 코딩에 비하면 굉장히 거칠고 fancy 하지 못한 코드였지만 다시금 ‘import’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한편 썼다는 쾌감을 너무 짜릿했다.

신경과를 택한 이유는 Brain-Computer interface(1)를 하고 싶어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랬었나보다’라고 문장을 끝내는게 낫겠다. 이번 일주일을 통해 충분히 가역적임을 깨달았다. 하루이틀 뒤면 다시 딱딱히 굳어있는 병원으로 돌아간다. 학생 때부터 많이 느꼈지만 의사 사회는 철저하게 고착화된 현대판 카스트 제도라는 느김이 강하다. 예과 1학년 때부터 내가 있을 곳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훗날 이 글이 나의 ‘표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The boy didn’t know what a person’s “Personal Legend” was. It’s what you have always wanted to accomplish. Everyone, when they are young, knows what their Personal Legend is. At that point in their lives, everything is clear and everything is possible. They are not afraid to dream, and to yearn for everything they would like to see happen to them in their lives. But, as time passes, a mysterious force begins to convince them that it will be impossible for them to realize their Personal Legend.” – PAULO COELHO, THE ALCHEMIST


(1)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49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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